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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를 보다가 갑자기 화면이 끊기고 광고가 나왔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서 흐름이 툭 끊기는 그 순간, 짜증이라는 말밖에 표현이 안 됐어요. 이게 처음 도입됐을 때는 뉴스 기사까지 날 정도로 시청자들의 불만이 거셌습니다. 꼼수냐 전략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방송사 측은 작가와 배우의 개런티는 올라가는데 광고 수익은 늘지 않아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참고로 이 중간광고를 방송 업계에서는 프리미엄 CM(Premium Commercial Message) 이라고 부릅니다. 프리미엄 CM이란 프로그램 방영 도중에 삽입되는 광고 형식으로, 프로그램 앞뒤에 붙는 일반 광고와 구분해서 부르는 용어입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지상파, 케이블 할 것 없이 프리미엄 CM은 만연해졌고, 넷플릭스마저 요금제에 따라 광고가 붙는 구조로 바뀌면서 광고 없이 드라마를 보는 게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간광고는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요. 영상 몰입도와 짜증, 그리고 광고 효과의 관계를 데이터로 살펴봤습니다.
몰입할수록 중간광고(프리미엄 CM)가 더 짜증나는 이유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서 광고가 끼어드는 것과 별다른 내용 없는 장면에서 끊기는 것은 시청자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미디어 인게이지먼트(Media Engagement) 입니다. 미디어 인게이지먼트란 시청자가 콘텐츠에 얼마나 깊이 집중하고 몰입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단순히 화면을 보는 것과 달리 감정적으로 완전히 빠져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 흐름이 끊긴 집단의 짜증 수치는 4.79, 평범한 장면에서 끊긴 집단은 3.66으로 차이가 뚜렷하게 납니다(출처: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이류함·고서진·이재영, 2018).
드라마에 완전히 빠져있던 순간에 광고가 끼어들면 그냥 방해받는 것 이상의 강한 부정적 감정이 생긴다는 겁니다. 수상한 파트너를 보다가 느꼈던 그 강렬한 짜증이 숫자로도 설명됩니다. 몰입이 깊을수록 방해받는 느낌도 크고, 그 감정이 더 강하게 터져 나옵니다. 별로 집중 안 하고 멍하니 보다가 광고 나올 때랑은 차원이 다른 반응인 거죠.
짜증은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게 좋은 걸까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짜증을 많이 느낀 쪽과 적게 느낀 쪽에게 똑같은 광고를 보여준 뒤 제품 태도와 브랜드 기억력을 측정했더니 결과가 두 방향으로 갈렸습니다.
제품에 대한 호감도는 짜증이 높은 쪽(2.60)이 낮은 쪽(5.19)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감정일치 현상(Mood Congruency Effect) 이라고 합니다. 감정일치 현상이란 현재 느끼는 감정이 이후 접하는 대상에 대한 판단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는 심리 작용으로, 짜증이 난 상태에서 본 광고 제품도 덩달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브랜드 회상(Brand Recall) 은 반대였습니다. 브랜드 회상이란 광고를 본 뒤 해당 브랜드의 이름이나 특징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짜증이 높은 쪽(4.25)이 낮은 쪽(2.05)보다 광고 내용을 훨씬 더 잘 기억했습니다. 강한 감정 상태일수록 뇌가 더 각성되면서 정보가 더 선명하게 각인되는 원리입니다.
저도 짜증이 났던 그 순간의 광고가 유독 잘 기억납니다. 싫었지만 기억은 남는 묘한 상황이죠.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좋은 결과일까요. 짜증이라는 감정과 함께 각인된 브랜드는 그 부정적인 감정도 함께 기억됩니다. 단순히 이름이 떠오르는 것과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시청자를 잡으려다 OTT로 떠나보낸 전략의 역설
저는 결국 넷플릭스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많은 시청자들이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게 이 전략의 가장 큰 역설입니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OTT 이용률은 2019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23년 기준 전체 국민의 72%를 넘어섰습니다(출처: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TV 방송사의 수익 구조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을 광고 없는 플랫폼으로 밀어낸 요인이 됐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광고 침입성(Ad Intrusiveness) 도 빠뜨릴 수 없는 개념입니다. 광고 침입성이란 시청자가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광고가 강제로 노출될 때 느끼는 거부감의 정도를 말합니다. 침입성이 높을수록 광고 태도와 제품 태도 모두 부정적으로 나타난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된 결과입니다.
짜증을 통한 브랜드 기억 효과는 단기적으로는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기억된 브랜드는 이미지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기억은 하지만 사고 싶지 않은 브랜드, 그게 중간광고가 만들어내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중간광고가 만성화된 시대에도 이 결과가 그대로 적용될까요. 처음 도입 당시에는 낯설어서 강한 짜증과 함께 기억에 각인됐겠지만, 이제 광고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광고가 나오는 순간 스마트폰을 집어 들거나 아예 무시해버립니다. 짜증보다 무관심이 더 큰 반응이 된 지금, 브랜드 기억 효과가 여전히 유효한지는 다시 들여다봐야 할 시점입니다.
